사와무라 에이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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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와무라 에이지상은 일본 프로 야구에서 해당 시즌 최고의 선발 투수에게 수여되는 상으로, 1947년부터 시상되었다. 선정 기준은 등판 25경기 이상, 완투 10경기 이상, 15승 이상, 승률 6할 이상, 200이닝 이상 투구, 150개 이상 탈삼진, 평균자책점 2.50 이하 등 7가지 항목을 기준으로 하며, 2018년부터는 퀄리티 스타트(QS)와 유사한 자체 기준이 보충 항목으로 추가되었다. 1982년 이전에는 기자단 투표로 수상자를 선정했으나, 이후에는 위원회가 선정한다. 역대 최다 수상자는 스기시타 시게루, 가네다 마사이치, 무라야마 미노루, 사이토 마사키, 야마모토 요시노부로 3회 수상했으며,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20회로 팀별 최다 수상 기록을 가지고 있다. 사와무라상 선정 기준에 대해서는 시대에 맞게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과 기존 기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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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와무라 에이지상 | |
---|---|
기본 정보 | |
이름 | 사와무라 에이지상 |
로마자 표기 | Sawamura Eiji-shō |
일본어 표기 | 沢村栄治賞 |
별칭 | 사와무라상 |
![]() | |
개요 | |
스포츠 | 야구 |
선정 위원회 | 사와무라상 선정 위원회 |
종목 | 야구 |
수상 대상 | 그 해에 NPB에서 활약한 완투형 선발 투수 |
첫 회 | 1947년 |
최다 수상 | 3회 스기시타 시게루 가네다 마사이치 무라야마 미노루 사이토 마사키 야마모토 요시노부 |
최근 수상 | 야마모토 요시노부(2023년) |
2. 선정 기준
1982년 이전까지 사와무라상의 선정은 특별한 기준 없이 기자단 투표로 이루어졌다. 당시 거론되던 기준으로는 '20승 이상', '승리와 패배의 차이가 10 이상', '평균자책점 2점대 이하', '탈삼진율', '우승에 대한 공헌도' 등이 있었다.[55][19]
1981년 니시모토 다카시의 수상을 둘러싼 논란 이후, 1982년부터는 일본 프로 야구에서 활동했던 전직 선발투수 출신들을 중심으로 한 '사와무라상 선정위원회'가 수상자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49][50][13][14] 이때 다음과 같은 7가지 선정 기준이 마련되었다. 선정 위원회는 보통 5명의 전직 투수로 구성된다.[54][18]
항목 | 기준 |
---|---|
등판 경기 수 | 25경기 이상 |
완투 경기 수 | 10경기 이상 |
승리 수 | 15승 이상 |
승률 | 6할 이상 |
투구 이닝 수 | 200이닝 이상 |
탈삼진 수 | 150개 이상 |
평균자책점 | 2.50 이하 |
이 7가지 기준은 수상자 선정의 주요 지표이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모든 기준을 충족하는 투수가 수상할 가능성이 높지만,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수상하는 경우가 있으며, 반대로 모든 기준을 충족하고도 수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53][17] 최종적인 판단은 선정 위원회에 맡겨져 있으며, 기준 항목 외에 완봉 횟수나 선정 위원들의 인상에 남는 활약 등도 고려될 수 있다.[53][17] 예를 들어 2008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의 다르빗슈 유는 7개 기준을 모두 충족했지만(16승 4패, 평균자책점 1.88, 탈삼진 208개), 6개 기준만 충족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이와쿠마 히사시(21승 4패, 평균자책점 1.87, 탈삼진 159개)가 전반적으로 더 뛰어난 시즌을 보냈다고 평가받아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또한, 현대 야구의 투수 분업화 추세를 반영하여 2018년부터는 보충 항목으로 '선발 등판 경기에서 7이닝 이상 투구, 3자책점 이하'를 기준으로 하는 QS 달성률이 추가되었다.[59][23] 이는 특히 완투나 200 투구 이닝 기준을 충족하기 어려워진 현실을 고려한 조치이다.
2. 1. 퀄리티 스타트(QS) 도입
최근 투수 분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완투 경기 수가 줄어들고, 200 투구 이닝을 달성하는 투수가 없는 시즌도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56] 이러한 현대 야구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2018년부터 새로운 보충 항목으로 '사와무라상 기준으로 정한 QS 달성률'이 선정 기준에 추가되었다.[59] 여기서 QS의 기준은 선발 등판한 경기에서 '''7이닝 이상을 투구하고 자책점을 3점 이하'''로 막는 투구를 기준으로 하며, 이 기준의 달성률을 평가에 반영하는 것이다.[59] 이는 기존의 완투 10경기 이상 기준 등을 충족하기 어려워진 현실을 고려한 조치로, 이전부터 선정 위원회 내부에서도 완투 경기 수 기준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56]3. 역대 수상자
- '''굵은 글씨'''는 각 기준 항목의 리그 1위이다.
- 1950년부터 1988년까지 센트럴 리그 투수만을 대상으로 했으며, 1989년부터는 퍼시픽 리그까지 확대되었다.
- 소속 리그는 표 안의 배경색으로 구분한다 ( 센트럴 리그, 퍼시픽 리그).
- 1981년까지는 도쿄 운동 기자 클럽 부장회가 선정했으며, 1982년부터는 전직 선발 투수 출신(OB)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사와무라상 선정위원회'에서 선정한다.
- 선수 이름 옆 괄호 안의 숫자는 해당 선수의 누적 수상 횟수를 나타낸다.
- 심사위원 명단에서 '''굵은 글씨'''는 좌장 또는 좌장 대리이며, ★ 표시는 위임 포함 불참자를 의미한다.
- 선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항목은 노란색 배경()으로 표시한다(1982년 이후 수상자에 한함).
- '''굵은 글씨 이름'''은 7가지 모든 기준을 충족한 투수를 나타낸다(1982년 이후 수상자에 한함).
4. 사와무라 상 관련 기록
1947년, 요미우리 신문사는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프로 야구 초창기에 강속구 투수로 명성을 떨친 '''사와무라 에이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 상을 제정했다. 이는 1956년 MLB에서 제정된 사이 영 상보다 먼저 만들어진 상이다. 사이 영 상은 모든 투수를 대상으로 하지만, 사와무라상은 해당 연도에 뛰어난 활약을 보인 선발투수만을 선정 대상으로 한다.[47][48][11][12]
1950년 양대 리그가 출범하면서 선정 대상은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소속된 센트럴 리그 투수로 한정되었다.
1981년까지 요미우리 신문사는 사와무라상 선정을 '도쿄 운동 기자 클럽 부장회'에 위임했다. 그러나 같은 해 니시모토 다카시의 수상을 둘러싼 논란이 큰 파문을 일으키자, 1982년 5월 14일 도쿄 운동 기자 클럽 부장회는 선정 작업에서 손을 뗐다. 이후 같은 해부터 NPB의 전직 선발 투수 출신(OB)들을 중심으로 한 선정위원회 방식으로 변경되었고, 7가지 항목의 선정 기준이 마련되었다.[49][50][13][14] 1989년부터는 수상 범위가 퍼시픽 리그까지 확대되었다.
현재 사와무라상 선정은 '''사와무라상 선정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이루어진다. 7가지 선정 기준과 보충 항목을 바탕으로 매년 12개 구단 중에서 원칙적으로 한 명을 선출한다. 하지만 최종 결정은 선정 위원에게 달려 있으며, 선정 기준 항목이나 보충 항목은 참고 자료일 뿐이다. 때로는 기준 항목 외에 완봉 기록이나 선정 위원들의 인상에 남는 활약 등도 고려 대상이 된다.[53][17] 수상자는 기본적으로 위원들의 토론을 통해 결정되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다수결로 정해진다. 선정 위원은 원칙적으로 5명으로 구성된다.[54][18]
아래는 역대 사와무라상 수상자 목록이다.
- '''굵은 글씨'''는 해당 기준 항목에서 리그 1위를 의미한다.
- 1950년부터 1988년까지는 센트럴 리그 소속 선수만을 대상으로 했으며(), 1989년부터 센트럴 리그와 퍼시픽 리그() 양대 리그로 확대되었다.
- 1981년까지는 도쿄 운동 기자 클럽 부장회가 선정했으며, 1982년부터는 전직 선발 투수(OB) 중심의 사와무라상 선정위원회에서 선정한다.
- 성명 옆 괄호 안의 숫자는 해당 선수의 수상 횟수를 나타낸다.
- 심사위원 명단에서 '''굵은 글씨'''는 좌장(맨 왼쪽) 또는 좌장대리를 의미하며, ★ 표시는 위임자를 포함한 불참자를 나타낸다.
- 표시는 선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항목(1982년 이후)을 나타낸다.
4. 1. 최다 수상자
2024년 시즌 종료 시점에서 사와무라 에이지상을 여러 차례 수상한 선수는 총 15명이며, 이 중 3회 수상자는 5명이다.[28] 외국인 수상자는 2명이며,[29] 지바 롯데 마린스 소속 선수는 아직 수상자가 없다.[30]- '''굵은 글씨''': NPB 현역 선수
투수 | 횟수 | 연도 |
---|---|---|
스기시타 시게루 | 3 | 1951, 1952, 1954 |
가네다 마사이치 | 1956, 1957, 1958 | |
무라야마 미노루 | 1959, 1965, 1966 | |
사이토 마사키 | 1989, 1995, 1996 | |
야마모토 요시노부 | 2021, 2022, 2023 | |
벳쇼 다케히코 | 2 | 1947, 1955 |
호리우치 쓰네오 | 1966, 1972 | |
다카하시 가즈미 | 1969, 1973 | |
고바야시 시게루 | 1977, 1979 | |
기타벳푸 마나부 | 1982, 1986 | |
우에하라 고지 | 1999, 2002 | |
사이토 가즈미 | 2003, 2006 | |
마에다 겐타 | 2010, 2015 | |
다나카 마사히로 | 2011, 2013 | |
스가노 도모유키 | 2017, 2018 |
4. 2. 팀별 수상 횟수
팀 | 횟수 |
---|---|
요미우리 | 20 |
주니치(나고야) | 11 |
히로시마 | 9 |
한신 | 8 |
소프트뱅크(난카이, 다이에) | 5 |
야쿠르트(고쿠테쓰) | 5 |
세이부 | 4 |
오릭스 | 4 |
라쿠텐 | 3 |
DeNA(다이요) | 2 |
닛폰햄 | 1 |
지바 롯데 | 0 |
기타 (쇼치쿠 로빈스, 긴테쓰) | 2 |
- 소속팀에서의 괄호 안은 팀의 전신을 의미한다.
- 2024년 시즌 종료 시점에서 지바 롯데 마린스만 수상자가 없다.[66]
4. 3. 기타 기록
- 2024년 시즌 종료 시점에서 여러 차례 수상자는 15명이며, 이 중 3회 수상자는 5명이다.[64]
- 2024년 시즌 종료 시점에서 외국인 수상자는 2명이다.[65]
- 2024년 시즌 종료 시점에서 지바 롯데 마린스 소속 선수 중 수상자는 없다.[66]
선정 기준이 마련된 1982년 이후(퍼시픽 리그는 1989년 이후) 7가지 선정 기준 항목을 모두 충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을 받지 못한 사례는 다음과 같다.
연도 | 투수 | 소속 | 등판 | 완투 | 승리 | 승률 | 투구 이닝 | 탈삼진 | 평균자책점 |
---|---|---|---|---|---|---|---|---|---|
1982 | 에가와 스구루 | 요미우리 | 31 | 24 | 19 | .613 | 263.1 | 196 | 2.36 |
2008 | 다르빗슈 유 (다르빗슈 유는 시즌 최종전인 10월 1일 라쿠텐전에 중간 계투로 등판해 200 투구 이닝과 7개 전체 항목을 모두 달성하면서 경기 후 “이것으로 사와무라상에 근접할 정도의 성적인데, 그럼에도 20승이 한 수 위였나? 기다리겠다”라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으나[67] 시즌 종료 후 상을 받지 못했다. 당시 다르빗슈는 사와무라상에 대한 미련은 없어졌다고 다음과 같은 심경을 밝혔다. "나는 2008년에 선정 기준을 모두 채웠지만 21승을 거둔 이와쿠마 투수가 수상했다. 공동 수상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결과에 만족한 사람은 이와쿠마 투수뿐이었다. 하지만 오프에 들어가자마자 하네다 공항 화장실에서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모 선배로부터 ‘자네는 젊으니까, 내년 이후에도 들어갈 수 있을 거야’라는 말을 들으면서 당시 내 나이가 22살이었지만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목표로 했던 타이틀이라 너무 아쉬웠다. 이듬해부터 사와무라상을 노리는 걸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68]) | 닛폰햄 | 25 | 10 | 16 | .800 | 200.2 | 208 | 1.88 |
2011 | 다르빗슈 유 | 닛폰햄 | 28 | 10 | 18 | .750 | 232 | 276 | 1.44 |
2013 | 가네코 지히로 | 오릭스 | 29 | 10 | 15 | .652 | 223.1 | 200 | 2.01 |
5. 1981년 기자단 투표 논란
1980년, 요미우리의 에가와 스구루는 16승(다승왕), 219탈삼진(탈삼진왕) 등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자단 투표 결과 사와무라상 수상자는 없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듬해인 1981년, 에가와는 31경기에 등판하여 20승(다승왕), 평균자책점 2.29(최우수 평균자책점), 221탈삼진(탈삼진왕), 승률 .769(최고 승률)를 기록하며 당시 투수 부문 주요 타이틀을 석권했다. (단, 최다 탈삼진과 최고 승률은 1980년, 1981년 당시에는 공식 타이틀이 아니었다.) 당시 에가와와 주요 경쟁자였던 팀 동료 니시모토 다카시의 성적은 다음과 같다.
에가와 스구루 | 니시모토 다카시 | |
---|---|---|
등판 | 31 | 34 |
완투 | 20 | 14 |
투구 이닝 | 240과 1/3 | 257과 2/3 |
승리 | 20승 | 18승 |
승률 | .769 | .600 |
평균자책점 | 2.29 | 2.58 |
탈삼진 | 221 | 126 |
사와무라상 수상자 선정은 1981년 10월 14일, 유라쿠초 스키야바시의 한 중화요리점에서 도쿄 운동 기자 클럽 소속 31개사 운동부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최종 후보로 에가와와 니시모토가 남았고, 선정 기준을 두고 격론이 벌어졌다. 닛칸 스포츠의 가나이 세이이치 부장이 '인격적 기준'이나 '당해 성적만 고려하는지' 등을 질문하자, 사회자는 '인격 기준은 전례가 없으며 당해 성적이 대상'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후 니시모토를 지지하는 의견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아사히 신문의 다나카 야스히코 부장은 시즌 초반 팀의 독주에 기여한 니시모토의 공헌도가 더 높다고 주장했다. 반면 데일리 스포츠의 곤도 게이 부장은 '숫자로 판단하는 것이 객관적'이라며 에가와를 지지했고, '우승 기여도는 MVP에서 평가할 문제이며, 사와무라상은 투수 역량을 평가해야 한다'고 반박했다.[69][33] 최종 투표 결과, 니시모토가 16표, 에가와가 13표, 기권 2표를 얻어 니시모토가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에가와의 압도적인 성적에도 불구하고 니시모토가 선정된 결과가 알려지자 큰 논란이 일었다. 언론사에는 "니시모토가 안 된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니시모토는 좋지만 사와무라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에가와다", "에가와는 지금도 너무 싫어하지만 숫자는 숫자로 평가하지 않으면 무엇을 기준으로 정할지 애매해진다. 개인적인 좋고 싫음의 감정으로 선택하는 것은 최악이다" 등 선정 결과에 항의하는 전화가 빗발쳤다. 당시 에가와에 비판적이던 팬들 사이에서도 선정 결과에 대한 이의 제기와 동정론이 많았다고 한다. 현역 선수들도 비판에 가세했다. 닛폰햄 소속이던 에나쓰 유타카는 "투수로서 최고의 영예이다. 숫자나 실력 모두 에가와 말고는 없을 것이다. 객관적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들을 나로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고, 요미우리의 호리우치 쓰네오 역시 "사와무라상의 권위가 없어져 버릴 수도 있다. 일본 시리즈가 코앞인데 바보같은 짓을 했다"며 당시 선정위원들을 강하게 비판했다.[70][34]
이러한 거센 반발 여론에 부딪혀, 각 신문사 운동부장들은 다음 해 사와무라상 선정위원직에서 사퇴했다. 결국 1982년부터는 전직 선발 투수(OB)들을 중심으로 한 '사와무라상 선정위원회'가 수상자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49][13]
훗날 2022년 3월, 에가와는 마키하라 히로미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당시를 회상하며, 니시모토가 자신에게 "卓ちゃん|스구루짱일본어, 미안해"라고 사과하러 왔던 일화를 밝혔다. 또한 그는 "나는 제대로 하려면 (투표를) 두 사람에게 해야한다고 말했거든. 니시모토가 되는데 정작 나를 뽑지 않는게 이상하다고 했어. 그 해에만 두 사람으로 했으면 좋았을텐데…"라며 당시 사와무라상을 공동 수상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71][35]
6. 비평
사와무라상의 선정 기준, 특히 완투 경기 수나 투구 이닝 등이 현대 야구의 투수 분업화 추세와 맞지 않아 논란이 있다.
1981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에가와 스구루는 31경기에 등판하여 20완투, 240.1이닝, 20승 6패, 승률 .769, 평균자책점 2.29, 221탈삼진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다승왕, 최우수 평균자책점, 탈삼진왕, 최고 승률 타이틀을 석권했다.[33] 하지만 사와무라상 선정 과정에서 논란이 발생했다.
당시 선정은 도쿄 운동 기자 클럽 부장회가 맡고 있었는데, 최종 후보로 에가와와 팀 동료 니시모토 다카시가 남았다. 니시모토 역시 34경기 등판, 14완투, 257.2이닝, 18승 12패, 승률 .600, 평균자책점 2.58, 126탈삼진으로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 1981년 에가와와 니시모토의 투수 성적 비교
항목 | 에가와 스구루 | 니시모토 다카시 |
---|---|---|
등판 | 31 | 34 |
완투 | 20 | 14 |
투구 이닝 | 240.1 | 257.2 |
승리 | 20승 | 18승 |
승률 | .769 | .600 |
평균자책점 | 2.29 | 2.58 |
탈삼진 | 221 | 126 |
선정 회의에서는 에가와의 성적이 압도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즌 초반 팀의 독주에 기여한 니시모토의 공헌도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아사히 신문 다나카 야스히코 부장)과 숫자로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데일리 스포츠 곤도 게이 부장)이 맞섰다. 다나카 부장은 "숫자로만 결정할 것이라면 공식 기록원에게 위촉하면 되고, 이런 회의를 열 의미는 없다"고 주장했고, 곤도 부장은 "우승에 대한 기여도를 평가하는 것은 MVP가 아닌가? 사와무라 상은 어디까지나 투수로서의 역량을 평가해야 한다"고 반박했다.[33] 결국 투표 결과 16표 대 13표(기권 2표)로 니시모토가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이 결정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많은 야구팬들과 전문가들은 성적 면에서 월등했던 에가와가 수상하지 못한 것에 대해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당시 에가와를 반대하는 팬들로부터도 "개인적인 호불호 감정으로 선택하는 것은 최악"이라며 선정 결과에 이의를 제기했다. 현역 선수 중에서도 닛폰햄의 에가와 쓰요시는 "숫자, 실력 모두 에가와 외에는 있을 수 없다"고 비판했고,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호리우치 쓰네오는 "사와무라 상의 권위가 없어지잖아"라며 선정위원을 강하게 비판했다.[34]
이 논란으로 인해 여론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도쿄 운동 기자 클럽 부장회는 이듬해 사와무라상 선정에서 제외되었고, 1982년부터는 전직 선발 투수 출신 OB들을 중심으로 한 선정위원회 방식으로 개편되었다.[13][14]
훗날 2022년, 에가와는 마키하라 히로미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여 당시 니시모토가 자신에게 "스구루, 미안해"라며 사과하러 왔었다고 밝혔다. 에가와는 "나는 옳은 판단은 두 선수 모두에게 표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니시모토가 받는다면, 내가 받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 해에는 두 선수에게 공동 수상을 했어야 한다"라며 당시 공동 수상이 이루어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35]
사와무라상의 선정 기준을 둘러싼 논쟁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크게 현행 기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과 시대 변화에 맞춰 기준을 변경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나뉜다.[36]
주로 쇼와 시대에 활약하며 선발 완투형 투수를 중시했던 원로 야구인들이 현행 기준 유지를 주장한다. 오랫동안 선정위원으로 활동해 온 호리우치 쓰네오는 2019년 인터뷰에서 "사와무라상은 원래 사와무라 에이지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상"이며 "선발 완투형 최고 투수에게 수여하는 것이지, 결코 그 시즌 최고의 투수를 뽑는 상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투수 분업화 시대라는 점을 인지하면서도 "상의 이름에 사와무라 에이지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이상 그 수준이나 기준치를 쉽게 바꾸고 싶지 않다"며 기준을 낮추는 것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38] 또한 "기준에 미달하는 사람을 무리하게 선정할 필요는 없다. 사와무라상은 야구계에서도 특별한 상이자 권위가 있는 상이다. 뽑힌 사람도 역시 사와무라상에 걸맞는 성적을 남기지 않으면 권위를 떨어뜨린다"거나 "과거 수상자를 봐도 사와무라상에 어울리는 사람이 선정되고 있다. 선정의 문턱을 낮추는 것은 상 자체나 과거의 수상자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의견도 있다.[36]
선정위원인 야마다 히사시는 투구수 제한 흐름에 대해 "프로, 아마추어 모두 투구수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너무 나가고 있다. 많은 이닝을 던지고, 감독 역시 마지막까지 던지게 해도 좋은 투수가 각 팀에 한 명 정도 나오기를 바란다"라고 말했으며, 히라마쓰 마사지는 "(2019년 후보였던) 야마구치 슌, 아리하라 고헤이도 분업제가 없었다면 더 완투하고, 더 많은 이닝도 던졌을 것"이라며 선발 완투형 투수의 부활을 기대하는 주장을 하고 있다.[42]
반면, 입단 초기부터 투수 분업 시대를 경험한 젊은 은퇴 선수나 현역 선수들은 기준 변경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이들은 "옛날과 지금은 타자의 수준이 다르다. 하위 타선에도 장타력을 갖춘 타자들이 많아 선발 투수가 쉽게 넘어갈 이닝이 없고, 필연적으로 투구 수가 늘어나 완투가 힘들다. 옛날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잘못됐다", "이미 선발, 중간 계투, 마무리 투수의 분업제가 자리 잡았고, 감독들도 승리를 위해 완투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런 환경에서 10완투나 200투구 이닝을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다"라고 지적한다.[36] 또한 MLB에서도 사와무라상 7개 기준 항목을 마지막으로 모두 충족한 투수는 1999년의 랜디 존슨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기도 한다.[36][39]
다르빗슈 유는 "시대가 변하고 있는 만큼 기용법도 변하니까 숫자도 달라질 수 있다. 현재 시대에 맞는 평가를 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고 의견을 밝혔고,[40] 야마모토 마사는 "투수 분업제나 투구수 제한이 메이저 리그의 영향을 받고 진화했다면 사와무라상도 미국식으로 변경해도 괜찮지 않을까"라며 퀄리티 스타트(QS) 요소를 기준에 추가하거나, 사이 영 상처럼 구원 투수까지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초기 컨셉에서 벗어나더라도 모든 투수가 동경한다면 상의 권위는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41]
최근 투수 분업화 심화로 완투나 200이닝 달성자가 줄어드는 추세를 반영하여, 2018년부터는 보충 항목으로 '선발 등판한 모든 경기에서 7이닝 이상 투구 및 3자책점 이하'라는 독자적인 QS 기준 달성률이 추가되었다.[23][59]
2019년까지 선정위원 다수는 기준 변경에 부정적이었으나,[42] 2020년 선정위원회 회견에서 좌장인 호리우치 쓰네오는 현재 상황을 고려하여 "사와무라 에이지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향후 전면적으로 선정 기준을 재검토할 시기가 되었다"고 밝혀, 향후 기준 변경 가능성을 시사했다.[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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